홈페이지  |  연락처  |  관광청 소개  |  블로그  |  유용한 링크   



종교와 신앙

암만에서 남쪽으로 86km 지점에 위치한 마다바는 적어도 4,500년간 인간이 거주해온 곳으로, 성경에서 모압 족속의 메드바 마을로 언급된다 (민수기 21:30). 모압과 나바테아의 통치가 수백 년간 이어진 후, 트라야누스 황제의 정복으로 메드바와 주변 지역은 로마의 아라비아 속주 일부가 되었다. AD 1세기 중에 로마의 아라비아 속주 전역에 기독교가 급속히 전파되었으나, 로마인들은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였다.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마다바에서 몇 명의 순교자가 신앙을 지키려다 희생당했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그리하여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지배적 종교가 되었다.

5세기부터 이어진 비잔틴 시대에 마다바에는 자체 주교가 있었고, 6세기부터 7세기까지 수많은 교회가 설립되었다. 모자이크 바닥은 이 시대의 전형적 특징이었고, 마다바에서 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설치되었다. AD 749년에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지진이 도시를 강타하였고, 도시는 결국 버려졌다. 1897년에 2,000명으로 구성된 세 기독교 지파가 고대 십자군 도시 카라크에서 마다바로 이주하였다. 이 사건 이후, 마다바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도시가 되었다. 새로운 이민자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신축 주택과 교회를 건설할 당시에 수많은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

두 명의 교황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의 예수 그리스도 세례터를 순례하였다. 먼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3월에 세례터를 방문하였다. 이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9년 5월에 이 곳에 방문하였는데, 그는 새로운 라틴 및 그리스 멜카이트 교회의 주춧돌에 축복하기도 했다.



마다바 및 주변 지역의 종교적 유적지는 아래와 같다.

성 게오르그 그리스 정교회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성 게오르그 그리스 정교회에는 AD 560년의 고대 성지 전체를 묘사하는 뛰어난 모자이크 지도가 있다. 이 지도는 북쪽으로 페니키아의 도시 티레와 시돈부터 남쪽으로 이집트까지, 서쪽으로 지중해로부터 동쪽으로 아라비안 사막까지를 묘사한다.

이 모자이크는 언덕 위의 평지가 교회 건축지로 선정된 1897년에 발견되었다. 건축을 위한 대지 정리 작업 시에 교회의 토대와 대형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 이 모자이크는 AD 560년경에 건설된 옛 비잔틴 교회의 바닥이었다. 모자이크는 원래 15.7 x 5.6m의 놀라운 규모를 자랑했으나, 현재의 크기는 15 x 3m이다. 모자이크는 성지의 모든 주요 도시와 특성을 대단히 정확하게 표현한다. 예루살렘은 가장 중요한 도시로서 주요 특성 일체와 더불어 지도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구 도시의 중심을 관통하여 동서로 이어지는 석주 간선도로인 카르도 막시무스와 함께, 성묘교회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로마인들이 AD 70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이후 건설한 카르도 막시무스의 일부를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볼 수 있다. 모자이크에는 당시 성지의 주요 도시 및 특징 대부분을 제시하는 157개의 그리스어 설명이 있다. 또한 이 모자이크에는 요르단의 도시 카라크와 마다바가 포함되어 있다.



느보산



신명기 마지막 장에 의하면, 느보산은 하나님이 히브리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히브리 선지자 모세에게 보이신 곳이다.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신명기 34:1).

유대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이 직접 모세를 이 산에 묻으셨는데, 모세의 마지막 안식처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학자들은 현재 느보산으로 지칭되는 산이 율법에 언급된 산과 동일한 것인지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무사(모세)가 이 산이 아니라, 서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 어딘가에 매장되었다고 믿는다.
 



시야가 봉우리 정상에서 교회와 수도원 유적이 발견되었다. 1933년에 발견된 이 교회는 모세가 사망한 곳을 기리기 위하여 4세기 후반기에 건립되었다. 교회의 설계는 일반적인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다. 교회는 AD 5세기 말에 확장되었고, AD 597년에 재건되었다. AD 394년에 에테리아라는 여성이 쓴 순례기에서 이 교회가 최초로 언급된다.

모자이크로 덮여 있는 교회 바닥 밑에서 자연석을 우묵하게 깎아 만든 무덤 6기가 발견되었다. 현재의 제단에서 다양한 시대의 모자이크 바닥 유적을 관찰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땋아 만든 십자가가 있는 패널인데, 현재 남쪽 벽의 동쪽 끝에 위치한다.
 



2000년 3월 19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지 순례 중에 이 곳을 방문하였다 (느보산은 요르단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 성지 중 하나이다). 교황은 방문 당시 평화의 상징으로 이 비잔틴 교회 옆에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느보산 이외에도, 바티칸에 의하여 밀레니엄 2000 순례지.

로 지정된 기타 성지 네 곳이 있다. 느보산 위의 뱀 십자가 조각(놋뱀상)은 이탈리아 예술가 지오반니 판토니의 작품이다. 이는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놋뱀(민수기 21:4-9)과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힌 십자가(요한복음 3:14)를 상징한다.
 



움 아르 라사스



움 아르-라사스는 성경의 신구약에 모두 언급된 마다바 동남쪽 약 30km 지점의 직사각형 형태의 성벽을 갖춘 도시이다. 이 도시는 로마인들에 의하여 요새화되었는데, 이 지역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왕조 우마야드의 통치가 시작된 지 100여 년이 흐른 후에도 이 도시를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현재 도시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지만, 교회, 우물이 있는 정원, 계단, 석조 아치 등 일부 건축물이 도시 동쪽에 남아 있다. 이 건축물들은 모두 발굴 및 복원되었다. 최근의 발굴 작업을 통하여 중동 최고의 비잔틴 교회 모자이크 일부가 발견되었다.
 



성벽 바로 바깥에는 최근에 발굴된 성 스데반 교회가 있는데, 완벽하게 보존된 탁월한 모자이크 바닥은 요르단에서 발견된 동종 최대의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마다바의 모자이크 지도에 이어 2위 규모이다. 성 스데반 교회의 모자이크는 요단강 동쪽 및 서쪽에 위치하는 27개의 구약 및 신약 성지 도시 이미지를 묘사한다.

움 아르 라사스에서 북쪽으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요르단에서 가장 높은 고대 탑이 있는데, 이는 초대 교회 수도사들이 은둔지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의 높이는 15미터로 문이나 내부 계단은 없다. 현재는 새들만이 이 곳을 지키고 있다.



 

 


디반

성경 시대에 디본으로 알려졌던 디반은 고대 모압의 수도였다. 이곳은 마다바에서 남쪽으로 약 30km 지점으로, (요르단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적절한 별칭을 얻은) 와디 무지브의 장관을 향하여 내려가기 직전에 위치한다.

이 곳은 두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있다. 남쪽 언덕은 이제 현대식 도시가 들어섰고, 북쪽 언덕은 1950년대 및 1960년대에 발굴되었다. 발굴작업을 통하여 초기 청동기 시대(BC 3000년경)에 이 곳에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드러난 반면, 중기 및 후기 청동기 시대(BC 1950년-1250년경)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는 없다.

성경에 의하면 아모리 왕 시혼이 모압으로부터 디본을 빼앗았고 (민수기 21: 21-30), 이후 이스라엘이 그를 몰아냈다. 이스라엘 왕 오므리가 모압을 정복하였으나, 디본에 거주하던 모압 왕 메사가 반란을 일으켜 북쪽으로 느보까지 왕국을 확장하였다. 메사는 승리를 자축하기 위하여 새로운 왕립 구역을 건축하고, 카르호(탁월함)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곳에는 모압의 신 그모스를 위한 산당, 왕궁, 문과 탑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백성을 위한 주택 등이 있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업적을 기록한 승전비를 세웠다. 1868년에 발견된 이 현무암 비석은 현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파악된 가장 장문의 모압 비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메사 왕은 매년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쳐야” 했던 양을 치는 자였다 (열왕기하 3:4). 이는 룻의 이야기(룻기 1: 1-5)와 더불어 모압의 농업 생산성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BC 731년에 모압은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모압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상대로 대 반란에 합류하였다. 그 결과, 모압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5년 만인 BC 582년에 멸망하였다.

디본은 약 500년간 버려진 땅이 되었다. 언덕의 동남 사분면에 멋진 사원을 지은 나바테아인들의 영향력 하에 디본에 다시 번영이 찾아왔다. 북문과 마찬가지로, 디본 정상의 벽도 재건되었다. 2개의 암각문과 목욕탕 유적은 3세기에 로마 수비대가 이 곳에 주둔했음을 나타낸다. 비잔틴 시대 및 그 뒤를 이은 우마야드 시대의 건축물로는 6세기 교회와 2개의 작은 돔이 있는 구조물 유적 등이 있다. 이 마을은 19세기에 남쪽 언덕으로 이동하여, 고대 언덕을 매장지로 사용하였다. .